[공동체경제 리포트] 아스팔트 위 10미터의 유랑을 멈추다… '트럭헬퍼'가 지은 안식처
2026.08.08
"발 뻗고 잡니다"… 쉴 곳 잃은 트럭의 따뜻한 쉼터
놀고 있는 땅 빌려 만든 유휴부지의 놀라운 기적
상생을 주차하는 '빅모빌리티' 모두에게 도움되는 생태계 구축
"안전하고 풍요롭게" 모빌리티 스테이션으로의 진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14시간의 고된 운전대를 놓은 화물차 기사들에게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길이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뉘일 공간을 찾는 일이다. 갓길이나 주택가 이면도로를 배회하다 쫓기듯 차를 대고 나면, 밤새 50만 원의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오지 않을까, 혹여 내 차를 미처 보지 못한 누군가가 추돌사고를 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선잠을 자야만 한다.
매년 200명 이상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화물차 밤샘 불법주차 추돌사고는 운전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차를 댈 곳조차 마련해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서글픈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주차 공간의 절대적 공급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영업용 화물차는 52만 대가 넘지만, 전국 공영차고지는 39곳에 불과해 주차 가능 대수가 불과 9,665대(전체 화물차의 1.8%)에 그친다. 이 척박한 아스팔트 위 절망에서 희망의 교차로를 만들어낸 이가 있다.
도심 속 방치된 유휴부지를 상용차 전용 주차장으로 탈바꿈시킨 소셜벤처 '빅모빌리티'의 서대규 대표다. 국내 1위, 글로벌 6위의 타이어 기업에서 14년간 근무하며 신사업을 기획하던 그는 트럭 차주들과 12일간 밤낮으로 일상을 동행하며 현장의 뼈저린 현실을 마주했다.
"수용률 1.8%의 벽을 넘다" 버려진 도심 공간의 재발견
서 대표는 "고된 하루 일과 후 가장 힘든 것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트럭을 주차할 공간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며 "국내 450만 대의 상용차가 운행 중이지만 이를 수용할 공영차고지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당시의 문제의식을 회고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차고지를 등록하기 위해 매년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매일 밤 불법주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기사들의 고통을 그는 외면할 수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2023년 4월, 그는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안정적인 타이틀을 내려놓고 빅모빌리티를 설립했다.
이들이 선보인 온·오프라인 주차 매칭 플랫폼 '트럭헬퍼'는 수익화가 어려워 방치되어 있던 전국의 대지, 잡종지, 공장용지 등 이른바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상용차 주차장으로 재생시키는 혁신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상용차 전용 민간 주차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대한민국 최초였기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서 대표는 "트럭은 차량마다 길이가 다 달라 정부의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며 "토지를 구하는 것부터 구획을 그리는 법, 통로 너비 설정까지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시작해 표준화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건물 없는 100% 나대지 특성상 여름철 폭우에 대비해 배수로를 파고 겨울철 폭설에 제설 작업을 하며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 숱한 고단함을 눈 녹듯 씻어준 것은 다름 아닌 어느 화물차 기사 가족의 진심 어린 커피 쿠폰 한 장이었다.
어느 날 서 대표에게 도착한 메시지에는 20년 넘게 화물 운송을 해온 남편이, 아빠가 매일 밤 단속과 사고 걱정에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잔 적이 없었는데 트럭헬퍼를 만나고부터 마음 편히 발을 뻗고 잔다는 아내와 딸의 눈물겨운 감사 인사가 담겨 있었다.
서 대표는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고객과 가족분들의 모습을 보며 더 큰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주차장 하나가 단지 거대한 트럭의 쉼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정에 평온한 밤과 일상의 안식을 되찾아준 셈이다.
14억 원의 선한 영향력… 세차·정비 품은 '상용차 허브'로
무엇보다 빅모빌리티의 비즈니스는 성장을 위해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레거시 집단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공동체경제’의 완벽한 상생 생태계를 구현한다. 쓸모없던 땅을 내어준 토지주, 특히 새로운 수익 창출이 어려운 고령층은 안정적인 임대 수익과 일자리를 얻게 된다.
화물차주는 과태료와 차량 파손의 불안을 덜고 주차 공간을 찾아 헤매는 헛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자체는 막대한 예산이나 주민 반발 없이도 고질적인 불법주차 민원을 해결하며, 지역 주민은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트럭의 위협에서 벗어나 한층 안전한 교통 환경을 보장받는다.
실제로 트럭헬퍼는 화물차의 불필요한 공회전과 배회 운행을 크게 줄여 탄소 및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낮추는 탁월한 환경적 효과까지 창출해냈다.
경기도 사회적경제원의 '사회성과관리사업 임팩트 리포트'에 따르면, 빅모빌리티가 2024년 한 해 동안 창출한 운전자 근로시간 감소, 고령자 소득 창출, 교통사고 피해비용 저감, 대기오염물질 감소 등의 총 사회적 가치는 무려 14억 5천만 원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눈부신 공익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아 빅모빌리티는 설립 1년여 만에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을 비롯해 기아 스타트업 챌린지 대상, 현대차정몽구재단 H-온드림 최우수상, 아산나눔재단 정주영창업경진대회 성장트랙 대상 등 국내 굵직한 창업 대회의 상을 휩쓸며 가장 돋보이는 모빌리티 소셜벤처로 우뚝 섰다.
현재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65개소에서 6만 4천 평의 부지와 2천여 면의 주차 공간을 확보했으며, 1천2백여 대의 상용차가 매월 정기 주차를 이용하며 연간 흑자를 달성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서 대표의 시선은 주차장 그 너머의 더 먼 곳을 향해 있다. 서 대표는 "저희의 비전은 450만 상용차 운전자들의 일상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단순한 주차장을 넘어 세차, 정비, 충전 등 상용차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형 '커머셜 모빌리티 스테이션'으로의 확장을 이미 시작했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길 위에서 청춘을 바치며 국가 물류의 혈관을 이어가는 이들의 쉴 곳을 만들어낸 어느 창업가의 선한 의지가, 위대한 상생의 생태계로 진화해가며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고 안전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원문: https://www.ngo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54